다윗 시대의 두 장막
- 기본 성막: 규례에 맞는 예배는 드렸지만 법궤가 없는 상태였다.
- 다윗의 장막: 법궤는 있었지만 기물들과 규례가 없었다.
- 다윗의 장막은 친밀함과 하나님의 영광을 경험하는 예배였지만,
성막(규례 중심의 예배)처럼 구름 같은 임재는 기록되지 않았다.
예배의 비밀: 친밀함과 규례의 균형
- 친밀한 감정적 예배(다윗의 장막)만으로는 지속 불가.
- 율법과 규례를 모를 때, 친밀함의 예배는 감정적 자극에 치우치게 된다.(풀밴드, 깃발, 춤)
- 반대로, 규칙만 남은 성막은 때론 임재가 있기도 함. (묵도로 시작해서 축도로 끝나는 형식이 다 정해진 예배)
- 솔로몬은 다윗의 장막(법궤)을 하나님이 정해놓으신 기물과 정해진 법대로 성전을 만들어 지성소로 안착시켰을때 임재의 구름이 임함
- 지성소는 성막의 기물들과 임재가 만나야 완성된다
- 진정한 예배는 하나님이 정하신 법도 + 친밀함 둘 다 필요하다.
- (종교개혁이후 가장 큰 발견이라는 선교사님의 개인적 생각-동의함)
성막의 의미
- 출애굽기 25:8–9
➔ 하나님은 "그들 가운데 거할 성소"를 짓게 하셨다. - 온 우주보다 크신 그 분이 지성소라는 작은 공간에 자신을 가두셨다.
- 3500년 하나님이 시내산에서 말씀하신 것
- 성막은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라:
하나님과 백성의 결혼 신혼집을 의미한다. - 광야생활 = 신혼생활
우리는 성전인데 내 인생의 집을 지어보지 않고
맨날 내 인생 어렵다 , 슬프다, 하나님 나를 잊으셨나
왜 나한테 왜 그러시나 한탄만 하는 사람은
주님과 같이 거할 공간이 없는것이다
내가 성전인데 내 인생에서 성전의 기물들을 완성하지도 못해 보고
뜰만 왔다 갔다 하다가 번제단 한번 못가보고 죽을 수도 있다
그래서 성막을 배움으로써 진리로 회복되는게 중요하다.
예배의 즐거움은 한편 예수님의 피가 중요하다
보혈을 의지하며 나아간다는 것은
독생자, 자신의 아들을 죽이신 하나님을 기억하는 것이
예배의 시작이어야 한다.
누가 설교하는지, 설교 제목을 먼저 보는 것이 아니다.
구원의 기쁨을 누리기 위해 예수님의 희생을 생각해야 한다.
찬양팀이 과하게 음악으로 밀고 나가면 나의 죄를 직면할 시간이 없다
찬양으로 진이 빠진 상태에서 설교에 집중할 수 없다.
예배시간에 미리 교회에 가서 나의 죄를 회개하고
내면의 번제단에서 나를 드리고 찬양의 기쁨으로 나아가면
나의 삶이 달라진다.
즐거운 찬양만 주구장창 드린다고 해서 내 삶이 뚫리지 않는다.
보수적인 교회에서도 내면의 번제단을 거치고 묵도로 들어가면
현생의 혼잡스러운 상황이 정리되고 임재로 나아갈 수 있다.
성전은 주님이 편하게 지내실 수 있도록 짓는 것이다.
주님이 빛도 안들어 오는 성막 안에 자신을 제한해 두신 것이 은혜인데
그 지성소가 우리 안에 있음을 깨닫는 것이 성막기도학교의 목표이다.
성막의 모든 것이 예수그리스도의 삶과 사명을 나타낸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삶과 사명과 연관된다.
영성의 크기는 사랑의 크기다.
주님이 약속하신 장소에서 기다려야 한다.
다윗의 장막
- 다윗은 법궤를 자기 성으로 가져오며, 하나님의 임재를 갈망했다.
- 다윗의 갈망:
율법대로 진행되지 않은 열심이지만, 하나님의 마음을 감동시켰다. - 레위인 찬양팀을 24반차 288명, 총 4000명으로 조직해 24시간 예배를 세웠다.
- 오벧에돔의 축복 사건:
법궤를 잠시 모신 오벧에돔의 집에 폭발적인 축복이 임했다 → 다윗을 다시 자극함.
법궤가 성막에 들어가면
대제사장만 1년에 한번 법궤로 나아갈 수 있는데
레위인이 아닌 유다지파로서
다윗은 하나님의 임재를 계속 보길 원하여
찬양대를 조직하다보니 다윗의 장막이 계속되었다
성막 vs 다윗의 장막의 통합
- 다윗은 결국 법궤(하나님의 임재)를 성막(규례)과 합쳐야 한다는 진리를 깨달았다.
- 솔로몬 성전 때 완성: 법도와 임재가 만날 때 구름 임재가 성전에 가득하게 됨.
- 유대인과 이방인이 하나되어 원뉴맨을 이루었을 때 예배가 폭발적으로 이루어진다.
- 유대인들은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두려움을 가지고 있으나 친밀함이 없고 이방인인 우리는 친밀함만 있고 하나님을 방종하게 대한다.
성막의 건축자
- 브살렐 (유다 지파):
이름의 의미: 하나님의 그늘 (보호) 금·은·놋 작업의 대가. 보석을 깎아물리며 나무를 새기는 정교한 일 - 오홀리압 (단 지파):
이름의 의미: 아버지의 장막(천막) 성막의 직조, 세마포 작업의 대가. - 기물을 만드는 것은 브살렐, 장막을 만드는 것은 오홀리압
- 둘 다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하게 되어 성막을 완성함.
기둥, 줄, 세마포의 영적 의미
성막은 지구상 어떤 예술가도 흉내낼 수 없는,
가장 아름다운 예술품이라 할 수 있다.
기둥 하나하나에도 정교하게 노을빛을 입히고,
은으로 박아 세워 놓았다.
중동의 뜨거운 햇볕을 받으면 그 기둥들은 반짝이며 빛나는데,
그 광경은 실로 장엄하고 눈부시다.
우리 인생이 어둡게 느껴질 때에도,
녹기둥처럼 회복되기만 하면 우리는 다시 빛나는 존재가 될 수 있다.
성막에는 60개의 기둥이 세워져 있다.
이는 과거 내비게이터 선교단에서 60구절 말씀 암송 훈련을 시작한 것과도 연결된다.
아가서에 보면, 주님과 동행하기를 주저하는 슬라미 여인을 위해,
왕이 싸움에 능한 칼을 찬 60명의 용사들을 보내어 신부의 가마를 호위하게 하신다.
이 60명의 용사들은 전장을 경험한 전투 베테랑들이며,
왕의 부르심을 받고 신부를 보호하는 사명을 감당한다.
그 광경은 매우 든든하고 영광스럽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신부가 해야 할 일이 있다.
그것은 단순히 "예, 주님"이라고 대답하는 것이다.
주님의 부르심에 '예스'로 순종하면,
주님께서 우리의 영적 눈을 열어
천군 천사들이 함께 동행하는 모습을 보여주실 수도 있다.
실제로 아수르 군대 18만 5천 명을 하룻밤 사이에 무너뜨린 천사처럼,
강력한 영적 군사들이 우리를 호위하게 된다.
전쟁의 때에 도망치는 겁쟁이가 아니라,
화살이 날아와도 웃으며 막아낼 수 있는 용사들처럼,
신부는 믿음으로 왕의 부르심에 응답해야 한다.
이 기둥들은 진리와 구원의 기둥을 의미하며, 은 받침과 은 고리로 연결되어 있었다.
줄은 믿음과 사랑, 소망과 평안을 상징하며,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을 의미한다.
60개의 기둥은 싸움에 능한 60명의 용사와도 연결된다.
이는 신부(교회)를 보호하기 위해 싸움터에서 단련된 용사들이 호위하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각자에게도 진리의 기둥을 세우시고,
은혜와 사랑의 줄로 단단히 묶어주시며, 깨끗한 세마포로 입혀주시기를 원하신다.
문을 통한 구원의 여정
성막의 문을 통해 우리는 구원을 얻고 생명을 얻게 된다.
문은 곧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청색, 자색, 홍색, 흰색의 의미를 깊이 묵상하며 문을 통과할 때,
우리의 삶은 예수님의 신성과 왕권, 인성과 희생을 실제로 경험하게 된다.
성막의 문을 깊이 묵상하고 믿음으로 통과할 때,
우리 인생은 과거의 상처와 현재의 혼란을 넘어,
예수 그리스도의 충만한 생명으로 충만해진다.
성막 기도의 첫 번째 의미
성막 기도의 출발은 "주님, 제가 이 문으로 들어갑니다"라는 고백으로 시작된다.
이 문을 들어선다는 것은,
이미 주어진 구원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감사와 찬양으로 그 사실을 선포하는 것을 의미한다.
삶 속에 감당할 수 없는 문제와 연약함이 있을지라도,
"나는 이미 구원받은 자입니다"라고 선언하며
기쁨으로, 감사로, 춤추듯 그 문을 통과하는 것이 성막 기도의 첫걸음이다.
이 문을 통과할 때,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약함을 가져가시고 강함을 주시며,
우리의 더러움을 가져가시고 깨끗함을 주신다.
우울함과 무기력을 가져가시고 의미와 열정과 힘을 부어주시며,
사망을 가져가시고 생명을 주신다.
문만 들어가도 이러한 교환이 일어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은혜를 누리지 않는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성막의 문을 통과하는 것은 단순한 상징이 아니라,
실제적인 구원의 체험이며,
하나님의 회복된 은혜를 누리는 첫 번째 단계이다.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나오면 꼴을 얻는다."
이 약속을 따라, 오늘도 믿음으로 성막의 문을 통과하기를 축복합니다
성막 문양의 실과 복음서
성막의 문은 네 가지 색의 실로 짜여 있었다.
각 색깔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과 성품을 예표한다.
- 자색은 왕권을 의미한다.
이는 마태복음에 나타난 왕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고대 중국에서도 자색은 황제만이 사용할 수 있었던 색으로, 신성한 권위를 뜻했다. - 홍색은 보혈을 나타낸다.
이는 마가복음에 기록된, 종으로 오셔서 죽기까지 섬기신 예수님의 사역을 나타낸다.
홍색은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과 구속의 은혜를 상징한다. - 흰색은 순결과 인성을 의미한다.
이는 누가복음에 등장하는,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아프고, 울고, 고통을 겪으신 인성을 지니신 예수 그리스도를 드러낸다. - 청색은 신성을 의미한다.
이는 요한복음에 묘사된, 태초부터 계신 말씀으로서 하나님의 신성을 가지신 예수님을 나타낸다.
청색은 하늘과 하나님의 신성을 상징하며, 요한복음은 공간복음과 구별되는 계시의 복음이다.
따라서 성막의 문 자체가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에 계시된 예수님의 모습을 집약하여 보여주는 셈이다.
성막 중심의 진영 배치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막을 중심으로 동서남북 네 방향에 따라 진을 쳤다.
성막 앞 동쪽에는 모세와 아론, 그리고 유다, 잇사갈, 스불론 지파가 배치되었다.
북쪽에는 단, 아셀, 납달리 지파와 무라리 자손이,
남쪽에는 르우벤, 시므온, 갓 지파와 고핫 자손이,
서쪽에는 에브라임, 므낫세, 베냐민 지파와 게르손 자손이 자리했다.
각 지파의 깃발은 동물의 얼굴로 표현되었는데,
유다 지파는 사자(마태복음 - 왕이신 주님),
르우벤 지파는 사람(누가복음 - 인자),
에브라임 지파는 소(마가복음 - 종),
단 지파는 독수리(요한복음 - 신성)을 상징했다.
이것은 훗날 네 복음서의 특징과 연결되는 하나님의 놀라운 예표였다.
성막 이동의 법칙
이스라엘 백성이 이동할 때,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앞서 갔다.
언약궤를 멘 레위인들이 그 뒤를 따랐고, 유다 지파를 선두로 다른 지파들이 질서정연하게 움직였다.
게르손 자손과 무라리 자손은 성막의 외부 구조물과 큰 기물들을,
고핫 자손은 성소 안의 거룩한 기물들을 운반하였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임재를 중심으로 살아가는 삶의 원리를 보여준다.
우리 역시 삶의 중심에 주님의 임재를 두고, 그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가야 한다.
성막기도 시작
- 내가 성전인것과 성령님이 내 안에 계신다는 것을 깨닫고 나를 성전 삼아 달라고 기도
- 성막의 방향이 동쪽을 향하듯 나의 지식과 생각, 마음과 감정, 의지와 힘의 방향이 살아계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도록 성령님 나를 이끌어 주소서
- 나의 문제, 가족의 문제, 시대의 어둠, 과거의 상처, 트라우마, 참상, 억울함, 혼돈, 현재의 상황 등에서 벗어나 언제나, 어디서나, 날마다 매 순간 예수님이 내 삶의 중심이 되도록 나를 이끌어 주소서.
- 내 삶에 브살렐과 오홀리압의 역사를 이루셔서 내안의 성전의 모든 기물들이 진리로 회복되도록 하소서 지성소를 회복시키소서 우리 가정에서 우리 세대와 민족가운데 성막, 성전됨의 역사가 왼성되게 하옵소서
- 구름 기둥과 불기둥을 따라 이동했던 하나님의 백성들의 삶처럼 우리 삶이 성막, 성전을 중심으로 삶이 정돈되고 질서 있게 행하게 하소서
[기둥과 줄, 세마포를 세우는 기도]
▪ 주님, 60(12x5)개 진리와 구원의 기둥들을 저의 삶에, 우리 가정 위에, 우리가 섬기는 교회들과 우리 민족 위에 세워주소서.
▪ 싸움에 익숙한 칼 찬 용사 60명이 둘러싸 밤의 두려움으로부터 솔로몬의 가마를 지켜냈던 것처럼 (아 3:7-8) 주님의 사자들이 주의 종을, 우리의 가정을, 우리가 섬기는 교회들과 우리 민족을 둘러싸 호위하여 주시옵소서.
기둥 위 은 고리들 마다 튼튼한 줄로 팽팽히 당겨 연결시키신 것처럼 은혜의 줄, 사랑의 줄, 믿음의 줄, 소망의 줄로 저희를 이끌어 주십시오.
▪ 이 땅을 살아가는 동안 선을 행함을 기뻐하고, 자비를 베풀며, 불법을 떠나 의와 공의를 행하는 성도가 되게 하여 주사 주님께 옳다 인정함을 받는 세마포(계 19:8)의 빛나고 깨끗함으로 제 삶이 입혀지게 하소서.
[뜰문의 기도]
▪ 예수님은 양의 문(요 10:7) 이십니다. 날마다 내가 이 문을 감사함으로 들어가 구원을 얻고 나오며 ‘꼴’을 얻는(요 10:9) 은혜와 생명을 누릴 것입니다.
▪ 예수님은 영원 전부터 계신 하나님이시요 모든 창조의 근원이시며 알파와 오메가이시며 처음과 나중이십니다. 내가 청색 실로 짜여진 예수님의 신성(神性)의 문으로 들어갑니다.
▪ 예수님은 모든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고난 받고 존귀한 보혈을 흘리신 온 세상의 구주이십니다. 내가 예수님께서 고난 받으사 피를 흘리신 그 문으로 보혈을 지나 들어갑니다.
▪ 예수님은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이십니다. 모든 피조물들의 으뜸이시며 다시 오셔서 세상을 심판하실 주님이십니다. 내가 자색 실로 짜여진 이 문으로 들어가 주님의 왕 되심을 선포합니다.
▪ 예수님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셔서 새롭고 산길이 되어 주신 인자(人子) 되신 하나님이십니다. 내가 흰 색실로 짜여진 이 문으로 들어가 주님의 낮아지심, 성육신 하심을 찬양합니다.
▪ 성막 기도학교를 통하여 나를 하나님의 성전 삼으신 주님의 뜻을 온전히 깨달아 주께서 거하시는 아름다운 처소로 세워지는 완성되는 역사가 삶에서 일어나게 하여 주소서.
결론
성막의 뜰 문을 통해 시작하는 이 여정은 단순한 종교적 행위가 아니라,
우리 존재 자체가 하나님의 성전으로 세워지는 과정이다.
성막 기도학교를 통해 한 주 한 주, 성전된 우리 안에
기둥이 세워지고, 세마포가 드리워지고, 구원의 문이 활짝 열리는 은혜가 있기를 소망한다.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린도전서 3:16)
성막기도학교 성막기도 1강
에클레시아선교회 이재진 목사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