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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39장 광야 가운데 인내하며 살아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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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처럼 살고 싶다."
한 번쯤은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아무리 깊은 구덩이에 던져져도, 종살이로 팔려가도,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혀도, 결국은 총리가 되는 인생.
말 그대로 인생 역전.
우리는 '결과'를 알고 있기 때문에 요셉을 부러워하지만, 요셉 자신은 그 시간을 살면서 아무것도 몰랐다.

오늘 묵상한 창세기 39장은 바로 그 ‘모르는 시간’, ‘캄캄한 시기’를 다루고 있다.
요셉은 사랑받는 철부지 아들에서 하루아침에 노예로 떨어진다.
꿈 많고 혈기왕성한 나이에, 자유는커녕 매 맞으며 부림받는 종으로 살아야 했다.
그나마 충성스럽게 일해 집안을 관리하게 되었지만, 다시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힌다.

요셉은 이해할 수 있었을까?
'하나님, 왜 제게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거죠?'
요셉이 밤마다 하늘을 올려다보며 울었을지 모른다.
광야는 생각보다 길었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는 생각보다 깊었다.


하나님의 눈에 비친 요셉

하지만 성경은 놀라운 사실을 전한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창세기 39:2)

환경은 바뀌지 않았다.
노예였다. 죄수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요셉을 '형통한 자'로 부르셨다.
심지어 주변 사람들조차 요셉을 보며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이라고 인정했다.

요셉이 맡았던 것은 작은 가정의 살림살이였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 작은 공간에서도 그를 **'가정의 총관리자'**로 훈련시키셨다.
그리고 감옥이라는 더 좁고 답답한 곳에서도, '조직 관리'의 능력을 익히게 하셨다.
요셉은 알지 못했지만, 하나님의 시선에는 그 모든 시간이 연단이었고, 준비였다.

하나님은 광야에서 왕을 만든다.


나의 광야, 나의 어두운 시간

요셉의 이야기는 먼 고대의 전설이 아니다.
이건 지금, 오늘, 나의 이야기다.

살다 보면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난다.
최선을 다했는데 결과가 없고, 억울한 상황에 휘말리고, 기도했지만 오히려 상황은 나빠지기도 한다.
누군가는 "감사해라"고 쉽게 말하지만, 억지로 감사하려 하면 더 슬퍼진다.
'이게 감사할 일인가?'라는 회의감이 들기도 한다.

그럴 때 요셉을 생각한다.
요셉은 억지로 감사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주어진 자리에서 충성했다.
지금 상황을 미화하지 않고,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도, 하나님을 의지했다.

억지로 감사를 짜내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상황 속에서도 분명히 발견할 수 있는 하나님의 손길을 찾아 감사하는 것.
이게 요셉이 가르쳐 주는 광야의 생존법이다.


억지 감사가 아니라 발견하는 감사

하나님은 요셉과 함께 하셨다.
그리고 하나님은 오늘, 나와도 함께 하신다.

그러니 억지로 "좋은 일인 척" 할 필요는 없다.
억울한 상황에 분노하는 것도, 답답해하는 것도, 때로는 괴로워 우는 것도 인간적이다.
그러나 그 한복판에서도, 아주 작은 것 하나라도 하나님이 보내주신 손길을 찾을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형통'의 시작이다.

나는 오늘 내 삶을 다시 바라본다.

  • 비록 아직 꿈이 이뤄지지 않았지만, 매일 조금씩 성장하고 있는 나.
  • 비록 가시밭길 같지만, 포기하지 않고 걸어가게 하시는 은혜.
  • 비록 외로워도, 혼자가 아니라 함께 하시는 성령님.

이 작은 것들을 '발견'하고 감사하는 것이 요셉을 닮아가는 길이다.
억지 감사가 아니라, '발견하는 감사'.


적용: 오늘 나에게 던지는 질문

  1. 지금 내 삶의 광야 속에서도 하나님이 주신 은혜는 무엇인가?
  2. 억울한 현실을 그대로 인정하되, 거기서 발견할 수 있는 하나님의 손길은 어떤 모습인가?
  3. ‘나와 함께 하시는 성령님’을 오늘 어떤 상황에서 더 의지할 수 있을까?
  4. 결과를 모르는 이 시간 속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며 충성할 수 있는 작은 자리들은 어디에 있는가?

조용히 눈을 감고, 한 가지라도 답해 본다.
아주 작고 소박한 것이라도 괜찮다.
하나님은 나의 작은 고백 하나에도 함께 웃으시고, 힘을 더해주신다.


마무리: 광야는 끝내 왕의 길이 된다

요셉의 광야는 총리로 가는 길이었다.
그러나 총리가 되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준비가 진짜 목적이었다.

나의 광야도 마찬가지다.
성공, 승진, 인정, 이런 것들이 최종 목표가 아니다.
하나님께서 내 인생을 통해 이루고자 하시는 더 큰 뜻,
그것을 이루기 위해 지금 이 어둠 속에서 나를 연단시키고 계신 것이다.

그러니 포기하지 말자.
억지 감사가 아니라, '발견하는 감사'로 하루를 살아가자.
그리고 성령님께 조용히 손을 내밀자.

"주님, 제가 지금은 잘 모르겠지만,
당신이 함께 하시기에 오늘도 믿고 걸어갑니다."

광야는 결국 왕의 길이 된다.
요셉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시다.
그러니, 나도 끝내 웃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