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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영혼의 진수성찬

창세기 36장 묵상 불신자의 번영을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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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창세기 36장을 묵상하다가 

에서의 자손이 족장으로 꽤 많이 언급되는 부분을

보며 평탄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정작 영적인 계보는 야곱을 통해 이어지지만,
겉으로 보기엔 애서 쪽이 더 번창해 보인다.
자손도 많고, 족장도 많고, 땅도 넓고, 그냥 외형적으로는 대성공이다.

 

묵상하다 말고 문득 현실로 눈이 갔다.
일상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의 브랜드 옷을 보며 순간 또 똑같은 생각.

 

“돈 있다고 대놓고 티를 내네”
작지만 눈에 띄는 브랜드, 연예인이 자랑하는 가방, 알만한 사람만 신는 다는 신발.
내가 보기엔 마치 ‘에서 족속’들이 지금도 여전히 잘 사는 것만 같다.
그들의 당당함이 은근 꼴 보기 싫을 때도 있다.
속으로는 "돈 많다고 잘난 척은..." 하면서도,
괜히 내 옷깃을 여미게 된다. 뭔가 초라해 보이는 느낌?

 

그런데 말이다.

나는 ‘하늘의 보화를 소유한 자’ 아닌가?
말씀과 성령, 은혜와 소망이라는 영적 재산을 가진 사람이 바로 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부요함을 세상 앞에 드러내지 못하고,
여전히 ‘가난한 자의 눈빛’으로 살아간다.

왜 나 자신을 가난 속에 묶어두고 살아가는걸까?

 

창세기 36장을 다시 묵상해보니,
하나님은 ‘세상의 번영’을 허용하실 수 있는 분이셨다.
애서의 자손이 땅을 얻고 족장이 되는 것도 하나님의 손안에 있었다.
하지만 그 번영은 하나님 나라의 계보와는 상관없는 번영이었다.
그 번영 속에는 하나님을 향한 믿음도, 예배도, 회개도 없었다.
그러니 결국은 ‘흘러가는 이야기’일 뿐.

 

반면, 야곱은 그리 넉넉하지 않은 삶을 살았다.
여기저기 떠돌고, 형한테 쫓기고, 아들한테 속고...
그래도 그를 통해 메시아의 계보가 이어지고,
하나님의 구속사가 완성되어 갔다.

다시 말해,
‘번성’은 하나님의 임재와 동행의 척도가 아니었다.

 

그런데도 나는 종종 물질의 많고 적음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오해한다.
누가 나보다 잘 살면 괜히 위축되고,
하나님께 속상한 마음까지 들기도 한다.

하지만 주님은 오늘 이런 나에게 말씀하신다.
“얘야, 너는 이미 영적 계좌에 꽉 찬 부자란다.”
“비교하지 말고, 자랑하지도 말고, 불평하지도 마라.”
“그 돈으로 뭘 샀는지가 아니라,

 

내가 너에게 뭘 맡겼는지를 기억해라.”

불신자의 번영을 보며 괜히 질투하거나
내 부족함을 탓하느라 지혜를 묶어버리는 죄,
하나님이 이미 주신 지혜와 가능성을 활용하지 않은 게
오히려 더 큰 문제 아닐까?

부자는 부자로서의 책임을,
나는 내 자리에서의 사명을 감당하면 되는 거다.

 

결국,
예수님 앞에서는 모두 죄인이다.
번성했다고 자랑할 수 없고,
가난하다고 핑계 댈 수도 없다.
남이 낭비한 죄도 심판받겠지만,
나는 나대로 받은 것을 묻어둔 죄를 고백해야 한다.

그래서 오늘 다시 마음을 다잡는다.

 

👑 제 안의 하늘은행 계좌에서 믿음으로 인출하며 살게 해주세요!
👣 명품보다 빛나는 복음으로 오늘도 걷겠습니다.
🕊️ 비교의 불행 대신, 사명의 감사로 살겠습니다.

 

“하나님, 저에게 맡기신 지혜와 은혜를 오늘 사용하게 하소서.
남을 부러워하며 움츠러들기보다,
담대하게 오늘 하루를 살아내게 하소서.”